2025년 회고록
Prologue. 집 한 채,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끝나지 않은 질문
2025년을 돌아보면 세 개의 장면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이사 짐을 다 풀고 난 뒤, 처음으로 내 이름이 적힌 등기부등본을 들여다보던 순간이다. 별것 아닌 서류 한 장이었지만, 묘하게 어깨가 무거워지면서도 동시에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1~2년마다 반복되던 ‘이사 고민’이라는 루프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동시에 부동산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어른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
두 번째는 주말 아침마다 집 앞 천변을 달리며 보던 풍경이다. 3km라는, 누군가에게는 워밍업도 안 될 거리였지만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숫자였다. 절대적인 수치보다 중요한 건, 안 할 수도 있었는데 했다는 것.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만든 변화였다.
세 번째는 회의실에서, 또 모니터 앞에서 반복적으로 던졌던 질문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올해는 유독 이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들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마다, 내가 개발자로서 가야 할 길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을 때마다, 이 질문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2025년은 어떤 면에서는 안정을 찾은 해였고, 어떤 면에서는 가장 흔들렸던 해였다. 뿌리를 내리면서도 동시에 다시 항해를 준비해야 했던, 그런 한 해. 이제 그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1부. 일상 이야기 - 뿌리를 내리다
1-1. 드디어 내 이름이 적힌 집
“이번 겨울은 여기서 보내고, 내년 봄쯤 되면 또 이사 준비를 해야 하나?”
몇 년간 반복했던 이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2024년 말,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다.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이 적힌 그 순간부터, 뭔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사실 집을 사기 전까지는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부 정책이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내 집이 아니니까. 월세든 전세든 계약 기간만 채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뉴스에서 부동산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솔깃해진다. 금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우리 동네 시세는 어떤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더라.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게 바로 어른이 된다는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 책임져야 할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는 것. 무겁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느낌.
2025년 한 해를 살면서 확실히 느낀 건, 내 집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물론 매달 나가는 주거비는 부담이다. 하지만 어차피 부모님 집이 아닌 이상, 독립해서 사는 한 주거비는 언제나 지출 항목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 자산으로 쌓이는 쪽이 낫지 않을까.
예전에는 회사 근처에 집을 얻어서 출퇴근이 편했다. 지금은 조금 멀어졌다. 그래도 만족도는 오히려 더 높다. 아파트 단지 앞으로 긴 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 뛰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펼쳐져 있다. 대단지라 사람도 많고, 그만큼 인프라도 괜찮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난 것보다, 삶의 질이 올라간 게 더 크게 느껴졌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를 새삼 깨달은 한 해였다.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이 아니라, 내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기반이라는 것. 그 기반이 단단해지니, 다른 것들도 조금씩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1-2. 주말 아침, 3km의 작은 승리
주말 아침이면 운동화 끈을 묶고 집 앞 천변으로 나갔다. 3km.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뛰는 워밍업 거리일 테지만, 나에게는 꽤 의미 있는 숫자였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 운동해”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하다. “그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냐”는 말이 돌아올 것 같아서. 하지만 나한테는 굉장히 큰 발전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 아침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처음엔 그냥 가볍게 시작했다. 별 기대 없이, 그냥 한번 뛰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어느새 루틴이 됐다. 주말마다 아침 3km 러닝.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성취였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장비가 신발밖에 없다는 것. 요즘처럼 추운 날에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뛰기도 힘들고, 평일에 입던 옷을 입고 나가면 금방 땀범벅이 된다. 한겨울에 입고 나가서 운동할 만한 옷이 따로 없어서,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이후로는 잠시 멈춘 상태다.
그래도 괜찮다. 절대적인 수치로 얼마나 많이 했느냐를 따지기보다, 올해는 우선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뭔가를 더 했다는 것.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에 옮겼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건,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주말 아침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선택, 운동화 끈을 묶는 선택,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선택.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3km가 됐고, 그게 모여 한 해가 됐다.
내년에는 겨울용 운동복도 하나 장만해야겠다. 그리고 조금 더 먼 거리에 도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올해가 시작이었다면, 내년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해가 되길 바란다.